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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훈수 문화

Kevin Kim
August 3, 20203 mins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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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요소 중 하나가 있다. 바로 ‘훈수’다.

화면에 등장한 사람이 얼마나 전문가이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든 관계 없이 모든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게 훈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모두 월드컵 시즌마다 그것을 똑같이 느낀다. 게다가 인터넷 방송이 다루는 것은 보통 게임과 같은 대중문화이다 보니, 시청자 중 전문가가 너무나도 많아졌다. 게임 플레이를 하나 실수하기라도 하면 자연스럽게 ‘갈고리 수집’이라고 불리는 물음표 러시가 채팅창을 가득 메운다.

게임에서 실수할때 흔히 볼수있는 채팅창 반응

훈수는 본래 바둑이나 장기에서, 플레이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다음 수를 가르쳐 준다고 하는 뜻이었다. 현재는 의미가 확장되어 거의 모든 분야에서 훈수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훈수의 역사는 깊다.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향혈’이라는 말을 알 것이다. 바둑판 뒷면의 사각뿔 모양의 조각을 부르는 말로, 바둑판에 착수를 진행할 때 울림소리 등의 타격감을 향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 향혈을 일본에서는 ‘혈류(血溜)’라고 부르고 있다. 직역하자면 ‘핏방울’로써, 훈수꾼의 혀를 잘라 피를 채우는 것이 그 기원이라는 으스스한 설화도 전해진다.

훈수가 스트리머에게 끼치는 부작용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꼽고 싶다. 일단 훈수는 스트리머의 자존감에 영향을 준다. 일단 인터넷 스트리밍을 시작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외모와 목소리 등 여러 가지를 공개적으로 송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 걸어가던 사람도 갑자기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휘청거린다는 말도 있는데, 웹캠 하나 앞에 두고 오디오를 계속 채워가며 1인 진행을 해야 하는 것이 스트리머의 숙명인데, 훈수는 많은 경우 지금 하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당연히 스트리머의 멘탈에 상처가 가지 않을 수가 없다.

훈수를 두기전에 제 자신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는게…

또한 훈수는 스트리머의 특정 행동을 지시함으로써 방송 콘텐츠에 영향을 직접 주므로, 스트리머의 방송 흐름을 방해한다. 또 다른 문제로는 스포일러가 있다. 훈수는 현재 방송 시점 이후의 콘텐츠 진행을 미리 숙지, 또는 예상한 상태에서 발생하므로 자연스럽게 스포일러를 동반하며, 이는 시청자 간의 마찰을 유발할 수 있다. 이외에도 소위 ‘훈수충’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많은 이유로 환영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세돌이 바둑을 두든, 페이커가 미드 레인에 서든, 그들은 언제나 존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좋지 않은 훈수를 우리는 왜 굳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저 치열한 IT업계에서 고개를 돌려 잠깐 인류학을 바라보자. 현재 인류 사회 구성원 비율의 100%를 차지하는 종은 ‘호모 사피엔스’이다. 이 글을 작성한 나도,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모두 같은 호모 사피엔스에 속한다. 우린 우리 이외의 인간 종이 없는 환경에 너무나도 익숙하여 우리도 모르는 새에, 인류는 계속 이렇게 살아왔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과거에는 이십여 종이 넘는 사람족이 존재하였으나, 일만 년 정도 전에 호모 사피엔스를 제외한 모든 인간종은 멸종하였다. 하지만 이런 생존경쟁 과정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가장 강인한 인간종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호모 에렉투스는 우리보다 월등한 달리기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네안데르탈은 훨씬 강력한 근력과 커다란 뇌 용량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보다 훨씬 약하고 느린 호모 사피엔스들이 결국 살아남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많은 연구는 호모 사피엔스가 ‘집단의 힘’을 통해 자신보다 훨씬 강한 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예상한다. 높은 사회성과 연대, 소통을 통해 현대까지 살아남아 많은 것을 이루어낸 우리 인간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지능도 근력도 아닌 바로 곤경에 빠진 타인을 도우려는 마음, ‘동정심’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시대는 변하고 우리는 이제 인터넷과 키보드를 통해 소통하게 되었으나, 그들의 후예인 우리가 아직도 변함없이 훈수를 두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인류 그 자체가 가진 본능인지도 모른다.

인터넷 시대로 진화해버린 인류?

동양의 철학자 맹자가 제창한 개념 중 ‘측은지심’이라는 말이 있다. 맹자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였으며, 우물로 기어가는 아이를 보고 급히 구하려고 드는 것처럼, 곤경에 처한 타인을 도우려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가 감내해야 할 훈수들은 결국 (훈수하는 본인이 의식하건 아니건) 그런 종류의 어떤 본능적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방송을 진행하며 겪는 훈수에 대해 조금만 더 마음을 유하게 가져 보도록 하자.

훈수에 대한 필자의 경험을 하나는. 예전에 어떤 게임을 하던 도중, 나는 다른 사람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고 방금 상황에선 어떤 식으로 플레이하는 것이 아까 시도한 기술보다 효율이 높다고 이야기하였었다 (물론 대부분의 훈수가 그렇게 행해지듯이, 그가 먼저 나에게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온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그가 한 말은 “저도 알고 있는데요?”였다.

그럼 그는 대체 왜 그런 플레이를 했을까? 그 사람은 효율이 좋은 플레이를 통해 승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게임에서 특정 기술을 많이 사용해서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나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것은 게임의 목적을 ‘승리’가 아닌 다른 것, 조작감이나 그래픽 감상 등에 둘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오래 잊어버린 나에게 가해진 일침이었다. 웹툰 미생 6화에서 주인공 장그래의 이런 대사가 있다. ‘내가 뭐라고, 나 따위가 감히 비루한 훈수 질이냐!’

함부로 훈수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타인의 플레이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그 어리석은 플레이 자체,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그 사람의 게이밍, 또는 스트리밍의 목적일 수가 있다. 개인의 삶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고, 삶의 주체는 그것을 낭비할 자유가 있다. 그것은 그들의 결정이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저 때 그 답변을 들은 뒤로 훈수를 잘 하지 않는다. 누구나 소중한 자신만의 게이밍을 가질 권리가 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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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Kim

XSplit community manager for Korea and Australia. Translator for Korean. Mainly involved with the Fighting Game Community. General tech support for all XSplit products for individuals and organizations. Assistant for many stream productions involving XSplit products.More from this Aut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