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삶의 보정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취미로 삼고 있다. 그 유구한 역사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더 이상 웬만한 도전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미 상당한 세월 전에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인공지능으로 플레이어들을 감탄시키는 데 힘에 부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였다. 그것이 PVP(Player versus Player)이며, 플레이어들끼리 서로 승부를 겨루게 만든 것이다.
PVP 게임은 일정한 규칙 아래 플레이어들끼리 서로 겨루며, 승과 패가 존재한다. 승패가 존재하기 때문에 PVP게임은 필연적으로 실력의 차이를 드러내게 되었다. 요약해서 ‘누가 더 게임을 잘하는지’가 매우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PVP의 등장은 단순히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만 하는 게이밍에서 벗어나, 타인보다 뛰어나야 하는 ‘잘 하는 게이밍’이 의미를 가지는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곧이어 이스포츠, 프로게이머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그들은 명백히 타인보다 뛰어난, 게임을 ‘잘 하는’ 게이머들이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해 보자. 어도비 사에서 제작한 포토샵이라는 그래픽 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픽 툴 중 가장 대중적인 인지도와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프로그램이다.
1.0 버전이 1990년에 발매되었고, 지금까지 30년여에 걸친 업데이트로 인해 강력해진 프로그램 성능에 의해, 현재는 어설프게 인간이 작업하는 것 보다 프로그램 알고리즘에 맡겨 자체 보정을 진행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물을 생산하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이 페이지에서 그래픽 카드 보정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것은 이 ‘보정’이란 단어가 더 이상 우리 게이머들과 관련없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클라우드 게이밍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 즉 내가 원격으로 입/출력/통신장치만 이용해, 저 먼 곳에 있는 실제 연산장치를 조작하여 진행하는, 비디오 게임 스트리밍 원격 플레이를 얘기하는 것이다. 평소에 게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신기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른바 “성골” 게이머들은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키워드이다.
그 “성골” 게이머들이 클라우드 게이밍을 원치 않는 이유는, 게임을 조작할 때 기존의 화면지연, 입력지연에다가 통신지연까지 추가로 조작 지연이 더해져 내 캐릭터를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이유 때문이다. 예로 2019년 G스타 게임쇼에서 진행한 철권7 클라우드 플레이가 있다. 본인도 해당 기술에 꽤 관심이 있어 해당 시연에 참가했던 사람들 여럿에게 감상을 물어보았으나,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통신 속도보다 현재 넘치는 컴퓨팅 파워에 집중하여, 멀티플레이 게임 진행 시 해당 플레이어 플레이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다음 차례에 가장 입력 가능성이 높은 입력을 미리 게임 내에서 처리해버린다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게임이 스스로 ‘어차피 넌 다음에 a버튼을 누를 거잖아?’라면서 내 대신 입력을 처리하여 버린다는 것이다. 조금 섬뜩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혹시, 게임이 마치 포토샵처럼 자동으로 보정을 해 주는 이런 미래가 싫거나 두려운가? 그렇다면 유감이다. 당신은 이미 그런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금도 수많은 콘솔 FPS게임에서 조준 보정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패드로 하는 FPS게임에서 조준 보정이 없는 게임을 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몇몇 격투게임에서도 소극적으로 입력보정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른바 ‘자동 콤보’가 그것이다. 버튼 1개를 연타만 해도 적당히 실용성이 있는 연속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드래곤볼 파이터즈 등에서 도입하고 있다. 이미 도입된 지 오래되어서 어색하지 않게 느껴질 지 모르나, 분명히 내가 한 입력과, 게임에서 받아들이는 입력이 다른 시스템인 것이다.
만약 자기 혼자서 컴퓨터 AI를 상대로 하는 게임에서 어떤 식으로 보정이 이루어지건, 치트를 사용하여 플레이하건 그건 누구와도 상관 없는 일이다. 누구도 피해주지 않고, 자신이 즐거우니 그것은 괜찮은 것이다.
하지만 PVP 게임에서, 그 보정이 실제로 플레이 밸런스에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력하다면 어떨까? 불쾌해 할 상대방이 분명히 존재하고, 심지어 지금같이 프로게이밍 씬이 존재하게 되어 게이밍에 무게가 더해진 사회상이라면 실제적인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컴퓨터의 도움에 힘입어 나는 분명히 이전보다 강한 상태로 게임을 할 수 있겠으나, 내가 한 입력이 아닌데 그것을 과연 내 게이밍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지금 언급한 기술은 아직 먼 미래처럼 느껴지고, 바로 도입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허나 기술은 우리를 기다려 준 적이 없다. 언제나 그래왔다. 기술은 갑자기 우리를 덮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야외에서 무선으로 웹 브라우저를 사용할 수 있는 기기(예를 들면 노트북)을 하나 갖는 게 꿈이었으나, 지금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미래는 어떻게 바뀔 지 모른다.
어떻게 바뀔 지 모르는 미래에 대비하여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 하나는, 우리 모두 게임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선”을 미리 준비해 놔야 한다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 게임을 평생 할 순 없고, 계속 새 기술과 새 게임이 나올 것이다. 유연하게 생각해야 하고,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미리 염두해야 한다.
오히려 과거의 게이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지 모른다. PVP란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 컴퓨터를 상대로 기록을 세우는 게이밍, 상대보다 강해지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내가 재밌어 하는 게이밍을 찾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게임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비결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사례가 있다. 나도 이전엔 PVP가 아닌 게이밍이 아니면 경쟁에서 벗어난 게이머라 하여 약간 깔보는 경향이 있었으나, 크게 반성하게 된 계기가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AI 대전모드만 플레이하는 어떤 형님이 계셨는데, 하루는 남는 자투리 시간에 같이 AI게임을 진행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어떤 종목이건간에 CPU 대전에 대해 깊게 연구할 거리가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그 형님의 오더는 놀라웠다. “몇분 몇초 대에 상대 애니가 이 수풀 앞을 지나간다”, “몇분 몇초대에 상대 라이즈가 이 자리에서 포탑을 공격한다” 등의 지식이 거의 예언 수준으로 기가 막히게 딱딱 들어맞는데다가, 내 캐릭터, 상대 캐릭터의 이동속도, 공격 쿨타임, 모든 동선까지 계산하여(절대 그것은 예측이 아니었다. 지식에서 비롯된 계산이었다) 최고 효율로 킬을 올리는 것이다. 경악했다.
나는 그 때 ‘아! AI대전 연구에도 도가 존재할 수가 있구나!’하고 크게 감탄했었고, 많이 반성하고 시야를 바꾸게 되었다. 그 형님이 분명히 페이커보다 게임을 ‘잘 하는’ 게이머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단순한 AI 대전을 그 정도까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형님이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는 것을 반증한다.
어떤 종목이든간에 이런 게이머들은 존재한다. 캡콤 프로투어의 스트리트 파이터 5 프리미어 급 대회 8강에 진출할 실력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도, 자신 캐릭터의 다양한 패턴과 콤보 연구 결과를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것 또한 보물 같은 가치를 지닌 게이밍이다.
만일 당신이 철권의 모든 PS4 도전과제 트로피를 획득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좋다. 철권 월드 투어 파이널을 우승해야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그것 또한 좋다. 두 가지 모두 도전할 가치가 있는 일이며, 즐거운 일이고, 열심히 한다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두 게이밍 사이에 격차는 없다. 그것이 게임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자신의 게이밍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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